서론
전 세계적으로 5억 8천900만 명의 성인당뇨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1] 30세 이상 한국 성인 7명 중 1명(15.5%)이 당뇨병환자로 알려졌다[2]. 평생 당뇨병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측면에 영향을 미치며,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당뇨병자기관리는 상당한 도전과 부담을 초래한다. 그동안 당뇨병의 생리학적 기전과 특성 등을 밝히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당뇨병으로 인한 심리ㆍ사회적 측면 및 당뇨병환자의 삶의 질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크게 주목 받지 못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HIV/AIDS (human immunodeficiency virus/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정신질환, 간질, 비만 등에 대한 낙인은 잘 알려졌지만,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로 인한 영향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국제당뇨병연맹(IDF; International Diabetes Federation)은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시급한 관심을 요구하는 문제로, 당뇨병환자가 낙인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을 선언하였다[3]. 본 글에서는 당뇨병과 사회적 낙인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첫째, 당뇨병과 사회적 낙인의 개념과 실태, 둘째,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의 영향, 셋째, 사회적 낙인 예방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자 한다.
본론
1. 당뇨병과 사회적 낙인의 개념 및 실태
사회학자인 Goffman [4]은 사회심리학에서 낙인의 개념을 제시한 사람으로 낙인을 “개인의 평판을 훼손하는 특성”이라 하였고,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는 “사회 참여를 거부하거나 차별이나 배제를 가져오는 수치심, 불명예, 못마땅하게 여김의 표시”로 정의하였다[5]. 낙인은 크게 구조적 낙인, 대인관계적 낙인, 개인 내적 낙인으로 구분한다. 구조적 낙인은 법, 규정, 정책, 대중매체에서 전달되며 강화되고, 대인관계적 낙인은 조롱, 차별, 집단 괴롭힘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개인 내적 낙인은 내재화된 낙인으로 낮은 자존감을 초래한다[6].
해외 연구를 살펴보면 당뇨병환자의 상당수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하였다. 1형당뇨병 환자의 76∼93%, 2형당뇨병 환자의 52∼84%가 낙인을 경험한 바 있으며[6,7], 당뇨병환자 5명 중 1명이 당뇨병으로 인해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3]. 선행연구에서는 대체로 1형당뇨병 환자가 2형당뇨병 환자보다 낙인을 더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는데(76% vs. 52%, P < 0.0001) [8], 주목할 점은 1형당뇨병 환자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 가장 높은 낙인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7].
사람들은 흔히 당뇨병을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운동을 하지 않아서 등 좋지 않은 생활습관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보며, 당뇨병환자를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또 당뇨병을 자기관리의 부족, 현재 혹은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벌을 받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9,10]. 가장 흔하며 문제가 되는 낙인은 당뇨병에 걸린 것이 환자 자신의 책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당뇨병환자와 가족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배제, 거부, 비난, 고정관념 등의 부정적 판단은 당뇨병환자에게 수치심과 자기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가족, 친구, 동료, 의료진에게 당뇨병을 감추려고 하는 등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3]. 당뇨병을 감추려는 행동은 불안을 초래하여 인슐린 주사를 집에서만, 혹은 외출 시에는 화장실에서 주입을 하거나, 규칙적으로 혈당 모니터링을 하지 않거나, 주의를 끌고 싶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기도 한다[11]. 중요한 것은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당뇨병환자가 조기에 적절한 도움을 찾는 데 장벽이 된다는 점이다[12].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당뇨병환자에게 죄책감과 수치심, 두려움, 고립감, 당황스러움 등을 불러일으키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협한다. 영역별로 살펴보면 첫째,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어렸을 때 당뇨병을 진단받으면 당뇨병을 통제할 수 없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는 자신감 저하 등 성장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통제할 수 없는 당뇨병으로 인해 느끼는 수치심과 분노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둘째, 두려움, 고립감,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두렵고, 사교 모임이나 적극적인 대인관계를 피하기도 한다. 셋째, 신체적 측면으로, 잠을 잘 못 잤는지 피곤해 보인다는 말, 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러한 신체적 피로는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사회활동 참여도 위축시킨다. 넷째, 정신건강 측면으로, 타인과 사회의 판단, 반응, 편견에 늘 신경이 쓰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12].
2.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의 영향
당뇨병과 사회적 낙인의 관계에 관한 해외 연구를 살펴보면, 19편의 논문(n = 12,777)을 메타분석 결과 당뇨병에 대한 낙인과 심리적 디스트레스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되었고(r = 0.50), 당뇨병의 유형, 연령, 성별 등은 조절 변수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13]. 당뇨병에 대한 낙인이 삶의 질에 영향을 준다는 실증적 증거도 있다. 당뇨병환자의 32.9%가 당뇨병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꼈고, 17.5%가 동료나 친구에게 질병을 숨긴다고 응답하였다[14]. 로지스틱 회귀분석 결과 여성, 청년, 고졸, 자기효능감이 낮은 경우 및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 수치심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할 가능성이 있었다. 당뇨병에 대한 낙인은 자기관리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1형당뇨병 환자(n = 339, 평균 유병기간 19.9년, 평균 나이 36.9세)를 대상으로 한 연구[15]에서 당화혈색소 7% 이상인 집단이 이하인 집단보다 더 많은 낙인을 경험하였다. 이는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는 경우 당뇨병자기관리가 더 어려움을 보여준다.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치료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낙인으로 인해 의학적 치료나 식이요법을 따르지 않거나 질병, 치료 과정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타인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것도 혈당조절을 회피하게 하거나 인슐린주사를 건너뛰게 한다. 주사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당뇨병 치료에서 인슐린 사용을 꺼리게 하는, 즉 심리적 인슐린저항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15].
질적 연구의 결과들은 당뇨병환자가 경험하는 사회적 낙인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호주에서 성인 1형당뇨병 환자 27명을 인터뷰하고 분석한 결과[3], 이들은 비난(비만, 식사 습관), 부정적인 사회적 판단(당뇨병은 게을러서 생기는 병이다), 배제(학교 활동에서 배제, 운동장에서 놀림), 거부(보험 가입의 어려움)와 같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였다. 이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인슐린주사를 마약으로, 저혈당 상황은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 받기도 하였다.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특별대우 한다든지, 아프니까 활동에서 제외되는 것도 상처가 되었다. 또 당뇨병이 새로운 만남이나 결혼의 장벽이 될까 두려워 데이트에서 당뇨병을 밝히는 것도 꺼렸다. 낙인 경험은 성장기의 정체성 확립, 대인관계, 자기관리 등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결과는 최근의 국내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청년당뇨병 환자(n = 147)를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16]에서는 소아청소년기에 당뇨병을 진단받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당뇨병에 대한 주변 태도로 힘이 들어 병을 숨기고, 특별대우를 받아 자존심이 상하고, 당뇨병 진단 후 학우와 교사에게 멸시나 차별을 받고 자퇴하기도 하는 등 당뇨병에 대한 주변 시선에 신경이 쓰여 위축된 삶을 살았음이 밝혀졌다. 즉,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당뇨병환자의 사회기능과 대처 능력의 손상을 초래함을 알 수 있다.
3. 사회적 낙인 예방 방안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 예방 방안을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제안할 수 있다.
첫째, 당뇨병의 발생원인 등 일반 대중이 당뇨병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당뇨병 및 당뇨병자기관리를 위한 교육(예: 1형당뇨병과 2형당뇨병의 차이, 치료 방법의 차이, 자기관리의 중요성)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20∼30대 청년당뇨병 환자의 당뇨병 인지율, 조절률이 노년층에 비해 낮은 상황에서[19] 당뇨병에 대한 교육은 병원뿐만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HIV/AIDS [20], 뇌전증[21]도 질환에 대한 지식 증진을 통해 사회적 낙인을 낮추었다는 실증적 증거가 있다. 당뇨병유병률이 14.2%인 싱가포르의 경우 “당뇨병과의 전쟁(War on Diabetes)”을 선언한 바 있는데, 당뇨병에 대한 대중의 이해, 지식 증진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5]. 당뇨병에 대한 지식이 낙인을 줄일 수 있으므로[15] 우리 사회에 반 낙인 메시지의 전달을 통한 인식개선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둘째, 가족이나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당뇨병환자이면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감소한다는 보고가 있다[5]. 이는 접촉 가설로서, 접촉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줄이고 공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당뇨병환자와의 개인적 접촉 증가가 공감 확대, 편견 감소, 고정관념의 감소를 유발하므로[11] 당뇨병환자와 함께 하는 활동, 교류의 기회가 필요하다. 의대생들의 당뇨병에 대한 태도와 낙인에 관한 접촉 기반 교육의 영향을 살펴본 연구[22]에서 1회의 교육으로도 학생들의 당뇨병에 대한 태도가 개선되고 낙인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사회적 낙인이 당뇨병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낙인을 다루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결론
당뇨병환자는 정기적인 병원 진료, 건강한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인슐린주사와 약물복용, 혈당 모니터링 등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평생 요구되는 자기관리 활동은 합병증을 예방하고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데 핵심이 되지만, 당뇨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은 상당한 도전과 부담이 된다. 특히 당뇨병환자가 당뇨병에 대한 차별, 배제, 비난 등의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면 조기에 적절한 도움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며[12] 자기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3,11,16]. 당뇨병환자가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당뇨병에 대한 낙인과 이로 인한 심리ㆍ사회적 고통과 영향, 인식개선을 위한 학문적, 실천적, 정책적 관심은 부족하였다.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 예방을 위한 당뇨병교육자의 민감성 제고와 관심이 요구된다.


PDF Links
PubReader
ePub Link
Full text via DOI
Download Citation
Print




